Mountains[白頭大幹]

[스크랩] “잃어버린 백두대간(자병산)에 구슬프게 비가 내린다“

Eugene Lee 2010. 5. 25. 15:08

 

 

■ 산행일자 : 2010년 05월 23일 일요일

■ 산행경로 : 부수베리 - 원방재 - 전망대 - 백복령 - 생계령 - 고뱅이재 - 헬기장 - 석병산 - 두리봉 - 866봉 - 삽당령(역순진행)

■ 산행거리 : 27km 내외

■ 산행시간 : 13시간(후미기준 식사 및 휴식포함)

■ 산행인원 : 백두대간종주대 25명

 

 

어두운 새벽 3시30분 산행의 들머리 삽당령에 도착한다. 어둠속의 대간길로 접어 드는 시간이 다가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간길이 쉽게 산행을 마치도록 허락해 주지 않듯이 ... 오늘은 하늘님께서 구슬프게 비님을 내려 주신다. 그것도 제법 많은양에 비를 ...


맑디 맑은날에 대간길을 걷는것도 힘겹고 어려운데, 지난달까지 눈밭에서 그렇게 고생을 시키더니 오늘은 이렇게 비와함께 고생을 시키려나 보다. 제발 오늘하루 우리 모두 안전하게 이 어려운 길을 무탈히 걸을수 있도록 맘 속으로 기원을 해본다.


모두들 전쟁에 나서는 전사들 처럼 전투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다. 두리봉 방향 들머리로 잠시 오르다보면 곧바로 임도가 나타나고, 횡단하여 대간길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약 15분동안 지속 되는데 처음부터 맞이하는 오르막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오르막을 치고 올라 주능선에 올라서고 숨을 고를사이 없이 대간 마루금은 왼쪽으로 90도로 꺾여 진행을 한다.


두리봉 오르는 길에 철쭉과 산죽이 우리를 반겨준다. 이 구간의 흐름은 비교적 평지길 이지만 키를 넘기는 산죽과 철쭉나무의 터널이 비오는 야간산행의 고독을 잊게해 주는 환상의 길이다.


1시간여 진행한 두리봉 정상에는 정상을 표시한 표지판이 조금은 초라하게 나무에 걸려있고, 쉬어가기 좋게 목재 테이블이 놓여 있다. 아늑한 이곳에서 쉬어가면 좋으련만 이런 악천후에 쉰다는것은 춥기만 할뿐 의미가 없다. 쉼없이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여 두리봉을 지나친다.


불어오는 비바람속의 추위를 견뎌가며 석병산에 도착하니 어느덧 어둠이 걷히고 밝음이 찾아오고 있다. 사실 오늘 석병산의 아름다운 암릉과 일출을 기대 했건만 다 부질없는 상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석병산 일월봉에 올라 360도로 조망해 보는 아름다운 산하에 아침을 기대 했건만 다 물거품이 되었다.


석병산은 이름 그대로 바위로 병풍을 두른 듯, 정상 일대의 암벽이 특출하게 생겼다. 잠깐이나마 정상 아래의 위협적인 암릉을 만나것에 만족해야하는 하루다. 가야할 길이 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자리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다. 비오는 석병산에 정상석을 배경으로 간단하게 사진 한장씩만 남기고 바로 출발을 서두른다.

 

 

아침식사 전까지 길고긴 능선산행이 이어진다. 진행하는 좌측 방향에서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어디 마땅한 식사 자리를 구하지 못해 산행이 계속 이어진다. 배는 고프고 추위를 피할 곳은 없고 진퇴양난이다. 그나마 바람이 덜 부는 적당한 곳에 둘러앉아 추위에 떨며 아침식사를 마친다. 추위를 견디지 못해 허겁지겁 대충 한숱가락 뜨고 출발을 서두른다.   


헬기장을 지나 백두대간과 석병산이란 설명 안내판과 이정표에 석병산, 백봉령, 석회동굴이라 쓰여진 갈림길이 나온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강릉 옥계면 산계리 성황뎅이 마을에서 석회동굴도 구경하고 동해에서 바라보이는 석병산의 모습도 보고싶다.


오늘같이 비도오고 특히 산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등로 옆에 전망대가 있어도 올라가 보고 싶지않다. 그저 온통 안개에 가려진 하얀 세상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이 백두대간 중 마루금이 두개로 갈라진 곳이다. 어째서 마루금이 두개가 있을수 있을까? 아마도 세월이 흘러 대간길이 함몰되었고 그곳에 계곡이 생겼고 계곡을 우회하여 길을 내다보니 산경표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대간길이 생겨났으리라 여겨진다. 우리는 언제부터 누가 처음 밟았는지 모르지만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삽당령-백복령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노송지대를 안개속에서 지나고 강릉 서대굴 안내판에 도착한다. 강릉 서대굴은 강원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 되어 있으며 석병산층 석회암내에 형성되어 있다. 이 석회암 지대에는 서대굴 외에도 옥계굴, 동대굴, 남대굴 등 수많은 석회동굴이 발달되어 있다.


30여분 진행하니 생계령이 나온다. 서대굴 안내판에서 이곳 생계령까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우측에 넓은 지역이 함몰지와 더불어 “임계 카르스트 지역”이다. 임계 카르스트 지형은 자연사적인 가치와 아울러 지리적,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역이라고 할수있다.


카르스트 지형이란? 석회암 지대에 생기는 침식 지형으로 크로아티아의 카르스트 지방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지형적 특징은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지하수에 의하여 침식된 지형으로 나타난다. 지하수가 통과하는 층에는 석회암 동굴이 생기고, 지표에는 석회암 동굴이 지하수의 작용으로 무너져 움푹 팬 "돌리네"가 나타난다. 그렇다. 이 주위가 모두 돌리네 지역인 것이다.

 

 

생계령을 지나 넓은 임도길에 내린다. 백두대간 진행중 가장 맘 아퍼 하는곳. 이곳이 그 유명한 자병산 훼손 지역이다. 자병산 일대는 백두대간 능선을 기준으로 하여 영동과 영서의 구분이 뚜렷한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한라시멘트는 애초에 백두대간의 개념이 논의되기 전인 90년 이전부터 자병산 지역에 광구등록을 마치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경제성이 가장 큰 풍촌 석회암 광맥의 일부가 백두대간을 관통하고 있었다. 개발을 하기 위해 백두대간을 훼손하는 한라시멘트와 백두대간을 보전하려는 지역 주민들의 대립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자병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여 한라시멘트와 대립한 단체는 “백두대간 보전회“이다. 백두대간보전회는 백두대간 모든 구간의 동.식물 생태 분포와 연구조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이 거론되고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정부에서도 백두대간을 보전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6년 4월 산림청이 현지조사를 위해 자병산 현장을 방문한 후 백두대간보전회의 실질적인 조치로 자병산 한라시멘트에 사업정지 명령이 내렸다. 자병산 일대는 산림청 산하 국유림 지역이므로 산림청의 행정 명령으로 1997년 2월까지 자병산 정상부 일대의 시멘트 채광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자병산의 한라시멘트 석회광산은 계속 운영이 되고 있다. 이미 산은 제 모습을 잃은지 오래다. 지역주민들에 따르면 자병산은 많은 동.식물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자연동굴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자병산은 자연사적 가치가 아주 높은 임계카르스트 지형을 지니고 있어 석회암지층에서 많이 발견되는 동굴들이 산재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녁이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빛나 신령스러웠다는 자병산을 수백미터 낭떠러지로 만들어버린 것이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더 좋은 아파트와 더 빠른 고속도로를 향한 욕심은 자병산을 사라지게 하고 우리가 기대어 살아왔고 살아갈 수많은 산들을 파헤치고 있다.


자병산은 "자주빛 병풍"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석병산이 "돌병풍"이란 뜻으로 그 아름다움으로 자병산과 자웅을 겨루었다고 한다. 자병산의 원래 높이는 872.5m이다. 이미 60m 이상 깎여나간 상태이고 허가받은 개발이 모두 끝나면 200m 이상 낮아질 것이라 한다.


수많은 종주자들은 대간산행 중 석병산에서 뒤돌아 자병산을 보면 자병산의 상처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경이 인간의 욕망과 자본의 횡포로 사정없이 훼손되고 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이어야 하는데 그 자연에  인간이 간섭하고 정복하고 훼손하니 자연은 이제 자연이 아니게 되었고, 인간의 무모한 행동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자색 돌이 병풍처럼 아름답다운 그 모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백두대간 동맥이 끊긴 자리에는 식물도, 곤충도, 동물도 없다. 돌을 깨는 발파소리에 주위 산에 새소리도 사라졌다. 다만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넘치고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있을 뿐이다.


이곳 석회광산에서 나오는 시멘트는 국제시장에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정부관계부처는 개발과 보존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대립을 단지 사업자와 주민 양자간의 문제만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시급한 것은 석회광산이 들어선 이후의 전반적인 동.식물상과 지질에 대한 정밀조사이며, 아울러 사업자와 주민단체 간의 갈등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노력이 필요하다.

 

 

어디선가 산을 깍아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주위에 포크레인이 여러대 보인다. 차라리 오늘처럼 안개에 가려 자병산의 처참한 모습이 보이지 않은것이 오히려 더 낫다 ... 자병산 훼손지역을 지나 드디어 해발 780m에 이르는 백복령 고갯마루에 두 발을 내딛는다.


강원도 강릉, 삼척과 동해에서 정선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곳 백복령을 넘어야 한다. 백복령은 삼척의 소금이 정선으로 넘어가는 고개였다. 옛 기록에 따르면 강릉에 48개, 삼척에 40개의 소금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소금의 주산지인 서해에서 생산된 소금이 정선지방까지 닿기는 무리였을 터. 정선이나 평창지역 사람들은 백두대간 너머 삼척과 강릉지방에서 생산된 소금에 의지하여 살았고 또한 정선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하기 위해 이 길을 넘나들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7번 국도, 그 중에서도 동해시 해변을 벗어나 42번 국도 백복령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르면 좁다란 길들 주변은 아직도 촌락이지만 시멘트 생산 공장의 운송 터널이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10톤 넘는 트럭들이 굉음을 내며 백복령을 향해 질주해 가는 모습은 옛 고개길의 풍취를 그립게 한다.


백복령 넘어가면 강원도에서도 오지중에 오지 정선군 임계면 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는 임계는 과거에는 강릉땅 이었으나 현재 정선에 편입된 땅이다. 전국 감자 생산량의 75%를 차지하는 감자 왕국이다. 이곳 임계를 찾는 사람들은 승려였던 돈연스님과 첼리스트였던 도완녀씨의 “메주와 첼리스트“로 발길을 먼저 잡는다.


도완녀씨는 서울 음대 출신인 첼리스트이며 독일유학 후 송광사의 학승 돈연스님과 결혼하여 이곳 정선 오지에서 감자골을 된장골로 바꾸었다. 재래식 된장을 대대적으로 담아 판매을 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에게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즉흥 첼로 연주도 해준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3천여 개의 된장독 항아리들의 행렬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마도 정선에서 생산하는 모든 콩은 이곳으로 모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복령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출발을 서두른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입맛들이 없는지 먹는둥 마는둥 식사를 마친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힘겨운 오늘 하루도 마감된다. 여기서 부수베리 까지는 10km 정도로 오늘 지난온 산길보다 편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장시간의 빗길을 걸오온터라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있다.   


평이한 오름길을 1시간여를 지나자 삼각점과 원방재 3.59km의 표지판을 지난다. 등로길 양쪽으로 철쭉의 축복을 받으며 걸으니 나름 빗속에서도 상쾌함을 느낀다. 내리막 길에 대간 종주자들의 정성어린 돌탑을 보며 완주의 그날을 기원도 해본다.


비록 가끔 잡목이 조금은 성가시게 굴어도 간간히 이름모를 야생화가 달래주고, 따스한 햇살의 기운은 없지만 안개낀 울창한 숲속과 고목의 세월을 바라보며 어느덧 오늘에 종점 원방재에 도착한다.



함께하신 대전2030산악회 “백두대간종주대“ 여러분 수고 셨습니다. 담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 간 첩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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