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s[白頭大幹]

[스크랩] 백두대간은 “활엽수가 이룬 극상의 원시림”을 넘어간다...

Eugene Lee 2010. 9. 7. 03:12

 

 

■ 산행일자 : 2010년 08월 29일 일요일

■ 산행경로 : 진동리 - 조침령 - 943봉 - 1133봉 - 북암령 - 단목령 - 오색삼거리 - 점봉산 - 망대암산 - 십이담계곡갈림길 - 주전골

■ 산행거리 : 25km 내외

■ 산행시간 : 12시간(후미기준 식사 및 휴식포함)

■ 산행인원 : 백두대간종주대 22명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으로 대간길을 걷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한주간에 피로를 충분히 풀고 산행을 해야 하건만 살다보면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오늘도 피로와 스트레스를 온몸에 짊어진채 대간길에 오른다. 영동고속도로를 나와 양양시내을 통과하여 조침령터널을 넘어 지난주 하산을 하였던 진동리에 도착한다. 폭풍전야와 같이 별빛 한점없는 금밤 이라도 비가 올것만 같은 왠지모를 긴장감이 엄습해오는 밤이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약1km의 임도를 따라 조침령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약간에 바람이 불고 있으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약 30여분 오르니 지난주에 반갑게 상봉 하였던 조침령 표지석을 만난다. 조침령은 강원도 인제 기린면 진동리에서 양양 서면 서림리 넘어가는 고개로, 진동리와 방동리 일대 주민들이 양양장을 보러 다니던 길이다. 고개가 높아 새도 넘지 못한다는 조침령.


곰배령을 품고있는 진동리와 아침가리를 품고있는 방동리의 유명세 덕에 조침령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조침령은 이제는 옛길이 될, 서서히 잊혀질 운명에 놓여 있다. 본래 조침령은 지금의 도로 한참 아래 쇠나드리에 있었다. 20년전 군인들에 의해 이 길이 개설되면서 인제 진동리와 양양 서림리 사람들이 오가던 옛 조침령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 또다시 새 조침령까지 터널이 생겨서 이제는 옛길이 되었고 사람도 그렇듯, 옛 조침령이 그랬듯, 이길도 백두대간 종주꾼들 외에는 넘나들지 않는 잊혀질 운명에 놓였다.


770m고도의 조침령 정상을 뒤로 하고 잘 정리된 목판길을 오르니 이제부터 진정한 산내음이 코끝을 자극하고 산들바람까지 솔솔 불어줘 산행하기엔 최적의 조건이다. 몇걸음 오르니 전망대가 나오지만 그냥 지나쳐 버린다. 이밤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작은 봉우리를 살짝 넘어 순하게 오르니 이정목이 세워진 곳에서 대간길은 좌측으로 틀어지고 몇걸음 올라서자 잡초사이에 삼각점이 박혀 있다. 대간길 따라 잡목(싸리나무, 철쭉나무)이 성가시게 나아있어 진행하기 까다롭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포토포인트 간판이 서있다.


포토포인트 지점에서 휴식을 취하며 진행방향쪽을 바라보니 속초시내의 야경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 ~ 이제 동쪽으로 양양을 지나 속초까지 왔구나 ... 그 다음은 고성이고 거기서 이 길도 끝이 나는구나 ... 몇 차례의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한동안 평이한 길을 걸어 가는데 양양 양수발전소에서 세운 “저수지내 출입금지” 경고판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포토포인트에서 강원도 전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 하부댐이 보인다는것을 알고 있었으나 야간산행이라 전혀 볼수가 없었다.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 발걸음이 가벼운 가운데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름길로 꾸준하게 오른다. 그리 어렵지 않게 산행을하는 사이 어느덧 하늘을 바라보니 붉은빛이 찾아들고 있다. 저멀리 동해 바다위로 붉은 기운이 힘차게 오르고 있는 모습이 잡목 사이로 보인다. 단목령이 5.8km 남은 표지를 지난다. 이제 날이 훤히 밝아져 주변에 상황이 뚜렷이 보인다. 완만한 길가에 맷돼지가 파헤친 자국이 보인다. 이런 자국은 소백산 구간 이전에는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태백산 구간 이후로 부터 유독 많이 눈에 뛴다.


순한 오르내림을 몇차례 반복하니 북암령에 도착한다. 단목령이 2.9km 남은 지점이다. 제법 너른 공터가 평온한 느낌이 들어 마음도 편안하다. 아마도 단목령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안도감 일지도 모른다. 잠시 쉬었다가 북암령을 출발한다. 이 구간에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다른 대간꾼들에 산행기를 읽어보면 점봉산도 보이고, 대청봉도 보이고, 한계령도 보인다고 하는데 내눈엔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 내공이 없어서인지 ...?


어느덧 좌측으로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보니 맑은 계곡물이 보인다. 단목령이 바로 앞에 보인다. 단목령 정상에는 한쌍의 장승이 서 있고 이정표가 있으며 나무의자가 설치돼 있다. 한가하고 평안한 분위기가 느껴져 쉼터에 도착한 느낌이다. 우리 일행이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다행히 단속반이 나오기 전이다.


이름만 들어도 그 비경으로 마음이 설레는 양양 오색마을과 인제 진동리를 잇는 백두대간 고갯마루인 해발 855m 단목령은 박달나무가 많은 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으며 박달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영동의 해물장수들이 내륙으로 넘나들거나 진동리 사람들이 양양에 장보러 다니던 통행이 아주 빈번하던 고갯마루였다고 한다.

 

 

단목령을 무사히 통과하고 아침식사를 한다. 늘 그렇듯 지금부터는 졸음과, 체력과 한판 승부를 펼쳐야하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리 힘들지 않은 오르내림이 이어지고 있다. 어디선가 제법 수량이 많은 계곡의 물소리가 또 들린다. 사람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이라도 뛰어 내려가 알탕을 하고 싶건만 ... 가야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고 시간은 여유롭지 않으니 그야말로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점봉산이 3.5km 남은 지점을 지난다. 이제 드디어 대청봉 등 설악의 봉우리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진정한 설악에 모습들이다 ...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덧 오색삼거리(실제로 사거리)에 도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제 오늘에 하이라이트 점봉산이 지척이다.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올거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날씨는 조금 무더우나 아직까진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나마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줘 산행하는데 땀을 덜 흘린 것 같으며 배낭을 내려 놓고 물로 목을 적신 후 점봉산을 향해 본격적인 오름을 시작한다.

 

 

초반부터 가파른 오름길이 나온다. 지금까지의 산행은 마치 워밍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비 해놓은 통나무 계단길로 고도를 높이는데 너무도 힘이 부친다. 땀은 온몸을 적시며 흐르고 무릎에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이를 악물고 봉우리에 올라 숨을 고르고 여기서 우측으로 틀어 진행하는데 이곳은 지도에 홍포수막터로 표시된 곳이다.


고도를 높혀 꾸준하게 오르니 산길은 너덜길로 바뀌면서 우측에 시야가 트인 곳에 설악의 주능선과 서북능선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산줄기 가운데 귀때기청봉과 대청봉만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도 대간길에서 만난 가장 황홀한 산세의 느낌이다. 여기서 고도를 조금 더 올리자 드디어 점봉산에 도착한다.


사방이 훤히 트여 보인다. 가야할 대간 방향에 설악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남쪽 지나온 대간에 능선들이, 동쪽 속초시내와 동해바다가, 서쪽 방태산과 그 연봉들이 어느하나 막힘이없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를 맞이한다. 강원도 땅은 언제나 크고 깊고 넓은 산지다.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그 거대한 모습을 보니 새삼 벅찬 감정이 느껴진다.

 

 

남설악 점봉산은 설악산의 주봉 대청봉과 함께 남북으로 이웃해 있는 거대한 육산이다. 비록 설악산이란 이름으로 같은 국립공원지역에 묶여 있지만 대청봉과는 독립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오색온천과 오색약수를 끼고 있긴 하지만 설악의 그늘에 가려 그 위풍을 펴지 못했었다. 하지만 가야동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주전골과 설악의 천불동을 옮겨 놓은 듯한 기암들로 당당히 설악에서 분리를 원하고 있다.


설악산이 화려한 산세로 이름을 날리는 반면, 점봉산은 수수하다. 만삭의 여인처럼 불룩하게 솟은 정상부가 그렇다. 그러나 이 산의 품은 한없이 깊고 깊다. 그 깊은 품에서 나무가 자라 숲이 되고, 다시 다른 나무에게 자리를 내주는 천이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점봉산은 “활엽수가 이룬 극상의 원시림”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점봉산 품으로 드는 곳은 진동리 설피밭마을. 우리나라에서 오지 중의 오지로 소문난 마을이다. 눈 많은 강원도 땅에서도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으로 이곳 주민들은 겨울이 되면 설피라는 독특한 눈신을 신고 다닌다. 특히 영동산간에 큰 눈이 내리는 2월 말에는 처마 밑까지 눈이 쌓일 정도다. 설피는 눈 위를 걸을때 빠지지 않도록 넓적하게 만든 겉신. 그래서 진동리 이름도 아예 “설피밭“으로 굳어졌다.


예전만 해도 설피밭마을은 이 땅 최고의 오지 가운데 하나였으며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조성되기 전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설피밭에 오지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침령을 넘어가는 길이 포장되면서 찾아오기가 쉬어졌다. 대신 “생태의 보고“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았다. 산림청은 점봉산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이 때문에 함부로 점봉산에 드나들수가 없다.


활엽수가 이룬 극상의 원시림 끝에 점봉산을 넘는 부드러운 고개가 있다. 바로 곰배령이다. 점봉산하면 당연히 “천상의 화원 곰배령“을 빼놓을수 없다. 곰배령은 인제 귀둔리 귀둔마을에서 기린면 진동리 설피밭마을로 넘어가는 삶의 고개로 주로 심마니와 약초꾼들이 이용하던 고갯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마니의 모둠터가 고갯길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귀둔리의 노인들은 봄철 장 담글때 필요한 소금을 구하기 위해 통을 얹은 통지게를 지고 양양시장까지 100리 길을 걸어서 다녔던 일을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곰배령은 지형이 고무레 또는 곰배팔이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수천평에 달하는 초원에 철따라 피는 작은 들꽃들이 아름다운 화원을 이뤄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나무 한그루 없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산초원으로 명성이 자자한 곰배령은 취나물의 자생지로 알려지면서 등산인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이곳으로 연결된 도로사정이 좋아지며 진입이 한결 쉬워졌다. 사실 곰배령은 몇년전 까지만 해도 오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것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알려지면서 지금은 많은 탐방객이 찾는 관광단지가 되어 버렸다.


해발 1,164m의 곰배령 고갯마루를 무대로 펼쳐지는 들꽃의 향연은 5월부터 8월 말까지 이어진다. 9월 중순에 들어서면 곰배령 초원은 벌써 늦가을처럼 황량하게 변한다. 물론 연보랏빛 쑥부쟁이와 주홍빛 동자꽃, 자줏빛 용담 등이 피어나지만, 아무래도 곰배령 들꽃 트레킹은 5월 중순부터 8월까지의 4개월간이 적합하다. 남설악과 북설악의 바람과 안개가 수시로 드나드는 길목인 곰배령은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들꽃으로 빼곡하다. 국내 최대의 야생화 군락지답게 언제나 풍성한 들꽃 잔치가 펼쳐지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이다.

 

 

 

이제 점봉산에 감동을 가슴에 묻어두고 하산을 서두른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가 한바탕 쏟아질 기세다. 그에 따라서 나의 근심은 커져간다. 혹여 하산길에 계곡물이 불어 고립되지나 않을까? 괜한 걱정이 든다.


급경사의 내림길을 조심스럽게 지나 망대암산으로 향한다. 가까워지는 설악의 모습이 더욱더 감동적이고, 등로 옆으로 보이는 야생화가 더욱더 아름다워 보인다. 다만 원시림의 길을 걷다보니 잡목이 등로까지 우거져 진행하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한동안 잡가지에 팔뚝을 긁히며 진행하니 망대암산 정상이다.


이곳도 역시 조망이 좋아 뒤돌아 보면 점봉산이 우뚝하고 설악의 주능선이 더 잘 바라다 보인다. 망대암산은 예전에 도적들이 망을 본 곳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고, 십이담계곡은 오래전에 주전골로 불렸는데 주전골은 위조지폐범들이 숨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지명에 얽힌 이런 사연을 더듬어보면 이 지역이 꽤나 험한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망대암산에서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서고 고도를 낮추며 긴 내림길을 진행하니 십이담계곡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이 오늘에 하산 지점이다. 오늘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불가피하게 이곳으로 하산을 결정하였다. 


이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주전골쪽으로 십이담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수량이 제법 많다. 아마도 어제 꾀 많은 비가 내린 모양이다. 계곡을 따라 펼쳐진 작은 소와 폭포 그리고 이를 덮고 있는 원시림을 걷다 더우면 계곡물로 세수를하고 배고프면 배낭을 열어 식사를하니 그야말로 신선이 따로 없다. 이또한 경험하기 힘든 아름다운 경험으로 오래토록 기억될 것이다.

 

 

함께하신 대전2030산악회 “백두대간종주대“ 여러분 수고 셨습니다. 담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 간 첩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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