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s[白頭大幹]

[스크랩] “번뇌를 버리고 길 떠나는... 백두대간 두타행“

Eugene Lee 2010. 4. 27. 16:39

 

 

■ 산행일자 : 2010년 04월 25일 일요일

■ 산행경로 : 댓재 - 햇댓등 - 목통령 - 두타산 - 박달령 - 청옥산 - 망군대 - 고적대 - 갈미봉 - 이기령 - 상월산 - 원방재 - 부수베리

■ 산행거리 : 24km 내외

■ 산행시간 : 13시간40분 (후미기준 식사 및 휴식포함)

■ 산행인원 : 백두대간종주대 17명

 

 

어두운 새벽 2시 30분 해발 810m의 고개 댓재에 도착한다. 인근의 동해에서 부는 바닷바람 때문인가? 제법 쌀쌀한 추위가 엄습해 온다. 넓은 주차장에 조명시설을 잘 해놓은 댓재 이정표 조형물이 밝게 빛나 보인다. 댓재는 삼척 미로면에서 하장면으로 넘어가는 414번 지방도상의 고개이다. 동해쪽에서 댓재로 오르는 길은 비록 꼬불꼬불 낭떠러지 길이지만 어두운밤 동해바다 위에 떠있는 오징어배 불빛이 장관을 이루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곳 댓재는 1984년에 새로운 도로로 뚫리면서 그 옛날 영동 남부권 주민들이 영동-영서를 오가거나 약초, 수산물 등을 옮기는 이동 통로로 활용했던 “댓재 옛길“이 잊혀졌다. 댓재 옛길은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한자어로는 죽현 또는 죽치령으로 불리며,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기에 주변 산세가 매우 웅장하고 경치 또한 수려하다. 삼척시는 수십년째 통행이 거의 없는 잊혀진 옛길을 작년 2009년에 복원 하였다. 과거 통행이 많았다는 것은 옛길에 남아있는 양조장터와 마방터, 산신각 등을 통해서 확인할수 있다. 삼척시는 이 옛길 4.6㎞를 복원해 3시간 코스의 등산로와 관광로를 활용하고 있다. 아직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차츰 삼척 관광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는 명소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백두대간 구간중 가장 험하고 힘든 구간이 어디일까? 많은 대간 종주자들은 대체로 속리산, 대야산, 두타산-청옥산, 설악산 구간을 꼽았으며 그 중에서도 두타-청옥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구간이 바로 그 힘든 두타-청옥을 지나는 구간이다.

 

 

산행을 시작한다. 산신각 옆으로 들어가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초반의 가파른 오르막길이 제법 힘들다. 언제나 그렇듯이 준비운동이 필요한줄 알면서도 그놈의 귀차니즘에 빠져... 항상 산행 초반에 고생을 한다. 마치 겨울산행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차디찬 바람을 느끼며 햇댓등에 오른다.


햇댓등 오르는 내내 우측으로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 해오름의 고장, 동해시의 야경이 그림 같이 보인다. 동트는 동해는 21세기 새로운 동해안 시대를 개척 하겠다는 국가계획에 따라 1980년 기존의 삼척 북평읍과 강릉 묵호읍을 통합하여 신도시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동해시가 20세기에 와서 어느날 갑자기 탄생된 것 만은 아니다. 이곳에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무려 2천년이라는 장구한 역사의 두타산과 무릉계곡의 물줄기가 굽이쳐 흘렀기 때문이다.


햇댓등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니 이정표에 통골재까지 거리는 2km를 표시한다. 비록 바람은 불어오지만 고요한 숲 위로 밤하늘 별이 보인다. 동해바다가 인접해 있어 날이 훤할 때면 동해에서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이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한다. 몇시간 후면 어둠길이 끝나고 날이 훤히 밝아질 것이다. 야간 산행을 할 때면 어서 빨리 어둠이 가시고 밝은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시 이정표가 나온다. 통골재 1km 라고 써 있는 듯한데 거리를 표시한 부분이 애매하게 보인다. 두타산을 오르는데 아직까지는 그리 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이정표가 나온다. 하지만 거리를 표시한 글씨가 지워져 있어 위치를 가늠할수 없다. 혼란을 줄바에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이든다.


통골재에 도착한다. 두타산 2.2km 이정표가 보이고 진행방향 직각으로 우천시 계곡유수를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잠시 휴식 후 길을 나서 산죽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리고 다시 약간 급경사 오르막길을 걷는데 철쭉 군락이 펼쳐 보인다. 역시 강원도의 봄은 늦게 찾아 온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한참 힘들게 오른 오름길 이후에 마치 편안한 느낌이 든다. 이제 두타산 정상으로 진입하는 8부능선 쯤에 도착한듯 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올라오면서 조금씩 보이던 눈이 능선위에 제법 많이 쌓여있다. 또한 그 눈이 얼어붙어 위험하기 그지없고 마치 겨울 산행인듯 추위 또한 대단하다. 우측 멀리 산 능선 위로 하늘이 붉은빛을 발하는 모습이 보이고 좌측 조망터에 올라서니 가야할 청옥산과 함께 대간능선이 멋들어지게 펼쳐 보인다.


두타산 정상에 도착한다. 제법 넓은 공터에 정상석과 헬기장 표시가 설치되어 있고 동쪽 하늘위로 장엄한 일출이 떠오른다. 아 ~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아침이여 ...

 

 

송강 정철은 그에 나이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강원도의 절경을 두루 유람 하였다. 이때 보고 느낀 아름다운 산수와 풍경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관동별곡”이다. 조선시대가 종말을 고할 때까지 약 300년간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폭넓게 향유된 시가이다. 지금도 국정교과서에서 부동의 고전으로 군림하는 작품이다.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팔경“은 동해안에 있는 8개의 명승지다. 간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고성의 삼일포, 삼척의 죽서루, 양양의 낙산사, 울진의 망양정, 통천의 총석정, 평해의 월송정 등이다. 지금은 월송정과 망양정이 경상도로 편입됐고 삼일포와 총석정은 북한에 있다. 강원도는 산이 높고 물이 맑을 뿐 아니라 동해가 인접해 있어 명승고적이 많았슴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비경이 강원도에 모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절경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높은산과 맑은물 그리고 푸르른 동해를 한눈에 만끽 할수있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한 곳이 있으니 바로 “두타산”과 “무릉계곡”이다.


두타산은 예로부터 영동남부의 영적인 모산으로 숭상되어 왔다. 동해에서 바라 볼 때 서쪽 먼 곳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은 정기를 발해 주민들을 지켜 준다는 도참설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은 두타산이 농사를 지으면 풍농을 주고, 고기를 잡으면 풍어를 주는 삶의 근원이 된다고 믿어오고 있다. 때문에 자연을 믿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봄, 가을로 두타산에서 제사를 지내왔다. 날이 가물면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기우제를 지내던 곳도 바로 두타산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맑고 깊으며 산림이 우거져 곳곳에 사찰과 명승지를 간직한 산이 바로 두타산인 것이다.


산이 높으면 지역과 지역간의 경계가 된다고 하였다. 두타산 정상은 동해와 삼척의 분기점이며 영동과 영서의 분수령 이다. 누가? 언제? 왜? 두타산이라 했던가? 두타산의 “두타“는 ”버리다, 씻다, 닦다“ 등의 뜻을 지닌 고대 인도어로서 두타행이라 하면 출가 수행자가 세속의 모든 욕심이나 속성을 떨쳐 버린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으며 참기 어려운 고행을 참고 행하는 것을 두타행이라 한다. 그래서인가? 이 산길은 허투루 걸을수 있는 만만한 산길이 아니다...


두타산에서 산줄기는 둘로 나뉜다. 서북으로 뻗은 산줄기는 백두대간 분수령이요, 동북으로 갈라진 산줄기는 투타산성과 쉰움산을 거쳐 동해로 이어지는 지맥이다. 두타산 정상에 3km 정도 거리에 있는 쉰움산은 “쉰개의 우물이 있는 산”이란 뜻인데 산꼭대기에 크고 작은 우물 50여개가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 쉰움산은 무속인들 사이에서 기돗발이 잘 받는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산정에 수천 사람이 앉을 만큼 넓고 편편한 반석이 있고, 그 반석위에 원형의 크고 작은 우물이 50개가 있어 이름을 “오십정“이라고도 한다.


쉰움산 가는길에 고풍스러운 소나무들과 빼어난 암봉이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하는 곳이 있으니 이곳이 두타산이 꼭꼭 숨긴 보물 “두타산성“이다. 이처럼 빼어난 장소를 우리의 선인들이 그냥 놔둘리 없다. 고려시대 이승휴가 이곳에 은거하며 스스로 "두타산거사"라 불렀다고 한다. 한민족이 단군을 시조로한 단일 민족임을 처음으로 밝힌 역사서 “제왕운기“는 이곳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듯 빼어난 절경이지만 가슴아픈 이야기는 전해온다. 사람들은 전쟁과 재난을 피해 두타산의 능선과 계곡에 많은 사찰과 인공 구조물을 구축했다. 그중 두타산성은 산 정상 아래쪽에 능선과 계곡을 막아 성곽을 만든 대표적인 인간의 흔적이다. 이 산성의 특성은 자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성을 쌓았다. 성곽을 구축하면서 산돌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다지 견고하지는 않다. 하지만 적들이 비집고 들어올수 있는 틈을 주지 않은 천혜의 요새이다. 임진왜란때 왜병의 주력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였다. 혈전 끝에 함락돼 생존한 의병과 노약자마저 모조리 살육되는 가슴 아픈 흔적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두타산성 일대는 한국전쟁 뒤에 끝까지 남아 저항하던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한 험준한 산이다. 소설과 영화 “남부군”으로 잘 알려진 빨치산들은 지리산에서 소백산과 백두대간을 거쳐 이곳 두타산과 청옥산까지 올라왔다. 북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이들이 북으로 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국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서면서 두타산과 청옥산 일대는 국군과 빨치산 간의 총격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아픈 상처를 간직한 곳이다.


두타산성을 내려와 산성 십이폭을 지나고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천년고찰 삼화사를 지나면 드디어 무릉계곡으로 떨어진다. 청옥산과 두타산에서 내려와 동해로 흘러드는 전천의 상류계곡이 바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무릉계곡이다. 무릉계곡은 이름그대로 신선이 그리도 살고 싶어 할 정도의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다. 세파에 찌든 나그네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고 가기에 안성마춤이다. 따라서 무릉계곡은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됐을 정도로 기암괴석의 석회암과 푸른솔이 한데 어우러져 빼어난 풍경을 뽐낸다.


또한 무릉계곡은 “2009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한국하천협회와 함께 전국의 하천을 대상으로 생명이 살아있는 하천환경 조성이라는 정책아래 생태계가 보전되고 테마가 있는 하천을 조사해 무릉계곡을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엄선했다.


족히 100여명이 앉아 쉴수있는 무릉계곡의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 무릉반석은 넓은 돗자리를 깔아 놓은 듯 스트레스에 치진 사람들을 반긴다. 계곡물이 비단치마처럼 반석 옆으로 쫙 펼쳐지며 흐르고 있다. 여기에는 산천어 등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들이 산다. 경치가 좋으니 옛날부터 시인묵객, 한량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이 남긴 흔적이 아직도 무릉반석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그중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사람인 봉래 양사언 선생의 석각이 명작으로 남아있다.


암울하던 군사정권시대에 무릉계곡에 들렀던 김지하 시인은 이 아름다운 무릉반석에서 귀곡성을 들었다 한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곳에서 죽어간 수천 목숨의 아우성이었다.


“ --- 두타산은 일곱개의 피복창이 있었다고 하더라/ 오십개의 우물터가 있었다고 하더라/ 오천명이 한날 한시에 총 맞아 죽었다고 하더라/ 피쏘 한복판에 물 못들어가는 큰 구멍 하나 있다 하더라/ 그 구멍속에 한 여자가 발 거꾸로해 지금도 떠 있다 하더라 ...”


김 지하 시인의 “너럭바위1” 중에서

 

 

두타산 정상까지 그리 힘들게 올라온것 같지 않다. 아마도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야간에 이동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청옥산으로 가는 급경사의 낼림길이 위험하다. 등로는 빙판과도 같이 얼어 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남도는 매화꽃, 산수유, 진달래, 벚꽃이 지고 철쭉이 올라오기 시작 했는데 아직도 강원도의 땅에는 무릎까지 눈이 쌓여 있으니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눈길에 능선을 걸어가며 비록 약간에 안개에 가려 선명하진 않지만 우측으로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 관광단지와 동해바다기 희미하게 보이고 또한 주변 산세를 보며 지나는 길이 제법 운치있게 느껴진다. 박달령에 도착하여 허기진 배를 채우고 청옥산으로 향한다.


널부러진 바위돌이 날카로운 길을 지나고 문바위재를 지난다. 청옥산이 1.1km 남아 있다. 숲길을 걷는 동안 햇살이 비춰온다. 분명 계절은 봄인데 산길은 눈으로 덮여있고 숲은 아직도 푸른 숲의 녹색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 청옥산 오르는 길이 꾀나 힘이든다. 아침 만찬을 즐겨서인가? 오히려 짧은 거리인데도 두타산을 오를때 보다 더 힘겹게 느껴진다.


드디어 청옥산에 올랐다. 두타산이라면 바늘에 실 가듯이 빼놓을수 없는 동지가 있다. 다름 아닌 이곳 청옥산이다. 해동삼봉(청옥, 두타, 고적대)의 하나인 청옥산의 청옥은 금, 은, 수정, 적진주, 마노, 호박과 함께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의 일곱가지 보석중 하나이다. 두타와 청옥은 공통적으로 이름은 불교적이지만 산의 생김새는 매우 대조적이다. 두타는 날렵하고, 청옥은 완만하며 묵직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두 산의 이름이 원래대로가 아니라 뒤바뀌었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팽팽하다고 한다.

 

 

조망없는 청옥산 정상에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남기고 약간 급한 경사 내림길을 걸어 고적대로 향한다. 두타산에서 내려올 때 보다는 길이 완만하다. 미세하게 오르내림을 반복한 후 연칠성령에 도착한다. 이름이 독특한 연칠성령 안내판에는 그 유래에 대하여 적혀있는데 “예로부터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이라 불리웠다.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라 하는데 조선시대 명재상 이식 선생이 은퇴 하였을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한 곳이라 전해진다. ”고 쓰여 있다. 요즘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산을 찾아오는데 이곳에서 서울을 그리워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연칠성령을 출발해 완만하고 긴 오름길을 걷는다. 진행방향에 위협적인 바위가 높게 보인다. 그 바위 형상이 마치 고적대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고적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 쯤 험한 길이 나타난다. 두타산을 오를때 보다 청옥산이 힘겨웠고 청옥산을 오를때 보다 고적대가 더 힘겹게 느껴진다.


고적대에 도착할 쯤에 암릉이 나와 진행이 더디다. 설상가상 오전 내내 멀쩡하던 왼쪽 무릎 통증이 오기 시작해 더욱더 더디게 진행한다. 드디어 고적대에 도착한다. 나름 주변 조망이 훌룡하다. 지도를 보니 진행방향 좌측 정선쪽 중봉산과 그 능선이 멋지게 보인다.

 

 

고적대를 내려가 삼거리에 닿고 다시 숲길 오르막 길을 걷는다. 길고 완만 하지만 눈길을 걷느라 다리에 피로가 많이 온다. 갈미봉 직전 우측으로 큰 바위와 그 위에 피어난 소나무가 멋드러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고 조금 더 진행하니 조망터가 나온다. 지나온 두타와 청옥이 늠늠하게 본인다.


갈미봉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와 점심 민생고를 해결한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이제 이기령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리고 상월산과 원방재가 얼마남지 않았다. 넓은 숲 지대가 나오고 작은 몽우리만 나와있는 철쭉 터널 길을 지난다. 또다시 완만한 내리막 숲길을 걷고 주변에 좋은 소나무 숲이 나타났다. 굵고 곧게 자란 소나무를 바라보니 웬지 흐뭇한 기분이 들어 명랑한 기분으로 숲길을 걸어간다. 숲 위로는 맑게 게인 높은 하늘이 보인다.

 

 

좀더 가다 또다시 소나무 숲 공터에 벤치가 나타난다. 이기령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이다. 다시 출발해 오름길을 걸으며 수령이 적은 소나무가 빽빽한 숲을 이루는 곳을 지난다. 소나무 아래에 산죽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니 우측 숲 너머로 시야가 트여 보인다. 아래에 임도가 보이는데 대간길은 그냥 지나가고 있다.


이기령에 당도한다. 잠시 휴식후 이기령을 출발해 오름 길을 걷는다. 상월산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그러나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평평한 헬기장일 뿐이다.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니 우측으로 멀리 시야가 트여 보인다. 바로 앞에 신비하고 경이로워 보이는 멋진 바위산이 서있고 그 뒤로 파헤쳐진 다음구간의 백두대간이 보인다.


이제 앞에 보이는 봉우리만 넘으면 원방재다. 하지만 제법 만만치 않은 봉우리를 구슬땀을 흘리며 오르니 상월산 이다. 그리고 내려서니 오늘에 종점 원방재다. 원방재에서 좌측으로 조금 떨어져 트인 곳에 잘 닦인 임도를 따라 정선군 임계면 부수베리 마을로 하산을 시작한다. 깊은 산 인근에서 삶을 영위하는 흔적인 이 길이 산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함께하신 대전2030산악회 “백두대간종주대“ 여러분 수고 셨습니다. 담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 간 첩 올림 -

 

 

                                            

비 상 / 임재범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 온통 내 자신을 가둬 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보여 /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싶어 /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추렸던 날개 / 하늘로 더 넓게 펼쳐보이며
날고싶어

감당할 수 없어서 버려둔 그 모든걸 /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지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 그래서 더 멀리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것보다 혼자를 택한거지 / 고독이 꼭 나쁜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은 /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깐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꺼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추렸던 날개 / 하늘로 더 넓게 펼쳐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꺼야 / 더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준거야 / 힘겨웠던 방황을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