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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15일 국제킥복싱연맹 Golden Glove 우승!

Eugene Lee 2009. 7. 19. 15:07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97년 12월 15일 "골든글러브대회"

군인 신분으로 출전한 킥복싱 시합에서 우승하여 받은 트로피와 체육관에서의 사진.

정말 의미있는 우승 이였다. 이 시합을 위하여 연습중에 이빨이 부러지는 사고도

있었고 사범인 내가 제자들 앞에서 지는 모습을 절대 보일수 없었기에 꼭 이겨야 했다. 

그리고 체육관 운영도 힘든상황. 이대로 무너질수 없다.

여러 가지로 힘든상황에서의 값진 우승이였다.

 그리고...그 후~!

더 이상의 시합은 없었다.  아니...시합에 출전하지 않았다.

이날 두번의 시합 모두 T.KO로 우승 했었다. [상대를 3번의 숏-다운을 시켰기 때문에 T.KO 승.]

 조금만 더 때리면 완전한 KO로 우승할수 있었지만, 고개 숙인 상대를 더이상 때릴수가 없었다.

보다못한 심판이 시합을 중단시켰고, 시합은 끝났다. 정말 힘겨운 승부였다.

시합이 끝나고 상대를 껴안으며, 몇번이고 되풀이 했던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였다.

비록 우승은 했지만, 뭔가 가슴 한편엔 씁쓸함이 남는다.

 

1999년 2월.

가평에 있던 체육관은  운영이 힘든 관계로 춘천으로 이전한다.

그리고 나는 2월 15일부로 중부전선으로 전출 명령을 받는다.

군생활 5년중 1년 반을 남기고 전출 명령을 받은 나는 새로운 부대 환경에 적응을 해야 했기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중부전선 근무를 하면서 정말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고요속에 어디선가의 굉음소리!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미확인 지뢰가 터지는 소리였다.

간혹 미확인 지뢰가 터져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니 대부분 죽었다!

들어가지 말아야 할곳을 넘었기 때문이다. 지뢰를 제가하며 수색을 시작한지 3일만에 시체를 찾은적도 있다.

죽은 사람은 어쩔수 없지만, 시체를 찾기 위해 목숨 걸고 투입된 장병들은 무슨죄란 말인가! 

밤이면 북에서 들려오는 대남방송 소리에 섞여 간간히 들리는 우리 아군의 대북방송 소리....!

가평에서 근무할때 느끼지 못한 새로운 분위기에서 나는 단점보다 장점을 찾아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GOP부대 근무의 장점 이라면 자연 그대로 보전된 휴전선의 풍경이다.

지금도 잊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다시 찾고 싶다!

GOP 및 GP 근무를 위해 철책과 전차방벽 사이의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보면 멧돼지는 기본, 고라니같은 야생 동물을 쉽게 만날수 있다.

겨울이면 민통선 논 밭에 군용지프 만한 독수리 수십 마리가 장관을 이룬다.

때로는 부대 연병장에 너구리가 내려와 부대원들의 축구를 방해 하기도 했다. 너구리는 자연으로 다시 잘 돌려 보냈다.

살생하면 부대에 사고가 일어난다는 주임원사의 말에 모두 동조하는 분위기이다.

 

중부전선 근무를 하면서 중대장 및 간부들과 인근 산으로 등산을 하며 허물없이 지냈고, 자연스레 산이 좋아지면서 산을 자주 찾게

되었다. 말년의 군생활을 부대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 하면서 나의 전방 체험은 1년 반만에 끝을내고 5년간의 긴 군생활을 모두 마무리한다.

사고없이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게 된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 1년 반의 전방 체험은 아무나 가질수 없는 나만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내 가슴속 깊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