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s[白頭大幹]

[스크랩] 꿈에 그리던 행복한 대간길 1구간[성삼재-천왕봉]

Eugene Lee 2010. 6. 8. 15:03

백두대간1구간(성삼재-천왕봉)
(성삼재-노고단-삼도봉-토끼봉-명선봉-벽소령-칠선봉-촛대봉-천왕봉)

  산행날짜

  2010년 6월 6일  일요일 (무박)

  산행코스

 

  산 행 코 스

 

 성삼재-(2.5km)(39분)->노고단대피소-(5km)(1시간 59분)->삼도봉-(7.4km)(3시간37분)->벽소령-(10km)(3시간13분)->장터목대피소 -(1.7km)(40분)->천왕봉->(5km)( 3시40분)->중산리

  산 행 거 리 / 시간

 

  약 37 km / 도상거리 (접속구간없음)

 

 오전3:15분-오후7:40분 총 16시간 30분 /  휴식 (아침,점심 휴식 3시간 30분 포함)

 

 ◈ 산행 진행 시간표

 

  03:15-성삼재

(낙동과 대간길 8시간이상 버스타고 산행하는데 비해 2시만에 도착 잠도 못자고 산행을 시작한다. 성삼재에 도착 종주 산행이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단체 팀은 익산 백두 산악회 대전 충일 산악회 뿐이었다 )

 

   03:54-노고단대피소

(  초반 포장길을 따라 오른다. 매번오던길 이지만, 초반을 힘겹다. 노고단 대피소 바로 밑 계단길을 잠깐 오르고 조금 가파른 돌계단을 타고 노고단에 도착한다. 후미팀은 기다리려 휴식하고 노고단에서 휴식하고 노고단 갈림길에서 휴식을 한다. 후미를 기다리려 쉬는 동안 컨디션 조절를 위해 주변을 맴돈다.   )

 

 04:47-임걸령

( 1320M 지점 후미팀을 기다리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 

 

05:09-노루목

( 일출이 시작하려 하지만, 못볼듯하다 노루목에서 후미팀을 기다리려 휴식을 취하고 전망터에서 조망을 한다. 행동식으로 초코바을 먹고 사계절대장님 뒤를 따라 간다. 일출을 보기위해 삼도봉까지 달리지만, 볼수는 없었다 -삼도봉까지는 진행속도는 빠르다 다만 후미팀 기다림이 길어져 컨디션 조절이 안되고 힘에겹다.  )    

    

05:55-삼도봉 

( 삼도봉 도착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조망을 한다. 일출을 삼도봉에서 볼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20분정도 늦어 보지 못한다. 지리산 종주길 능선 마루금을 타며 연하천 까지 진행한다.   )

 

07:20-연하천대피소 (1시간아침)

( 아침을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산행준비를 하고 출발한다. 1시간에 아침을 먹는라 다리 힘이 풀린다. 후미조와 상당한 차이가 벌어진것 같다. 선두조또한 1시간여 차이가 벌어진다. 벽소령까지는 편안한 능선길로 이어진다.)  

 

 

09:32-벽소령 대피소(18분휴식)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선두에서 후미조가 빠르게 진행해 선두조와 함류한다. 아자님 카멜레온님 흑색님 )

 

012:08-영신봉 

( 선비샘을 지나고 영신봉에 도착하고 철쭉 꽃밭에 감동하고 세석으로 내려선다. 점심을 함께 나누어 밥을 먹는다. -함께 산행을 하면 이래서 좋은듯하다.  나눔이 좋다. 추워지기 시작한다. 잠이 온다. 시간이 늦어질것 같다. )

 

12:20-세석대피소 (50분점심)

( 점심을 먹고 선두에서 하산할분과 갈라져 촛대봉으로 오름길이 이어진다. 밥을 먹고 오른터라 힘에 겹다. 추웠던 몸이 땀으로 젖는다)  

 

13:30-촛대봉  

( 계단길을 만나고 가파르게 오르내림이 연속이다. 촛대봉전 선두팀에서 행복슝님 과  남윤철님 점점 선두조에서 멀어진다. 후반 대장님 따라 붙느라 숨소리가 거칠어 지는것 같다. 속도를 일정하게 하는 스타일이라 빠르게 걷다 쉬는 것이 힘이 든다. - 주변 산야초와 산나물이 눈에 들어온다. 산행 내내 조망이 없을대 주변 에서 곰취를 찾아 본다. 강원도 에도 없던 곰취를 지리산에서 발견한다. ) 

 

14:35-장터목대피소 (25휴식)

 (장터목에 도착하고 잠시 후미조를 기다리려 쉬는 동안 오이와 토마토 과일쥬스를 나눈다. )

 

15:40-천왕봉 (30분휴식및조망)

(40분 가파르게 오른다. 힘들지는 않지만 땀이 많이 난다. 천왕봉에 도착한다. 이제에 대간길 땜방길을 마무리를 하고 오르페우스도 대간길을 마무리한다. 작년 6월부터 1년동안 대간길/ 낙동길과 낙동땜방길/ 대간땜방길/금남호남길 혼자 걸어왔다. 눈, 추위, 장염,배고픔 으로 힘든 땜방길을 혼자 걸으며 우락이와 함께 하며 진행했다. 우락이와  1년여 대간 땜방길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고맙다 우락아. 그리고 아자(3구간)와 사탕(5구간.및 차량지원),여유당(차량지원) 위험할까 전화주신 폭포형님 간첩님 산친님 월하독주님 대간팀 모든 산우님께 감사을 표합니다.)  

 

 

 * 알바 조심 구간 -  없다 이정표도 잘되어 있고 별다른 어려움이 없고 이정표만 잘확인 하면 될것 같다.

 

 * 산행 정보 - 동대전출발(07:20)-백무동출발(18:30), 서대전역구례구역(00:43분출발-03:25분도착) 시내서버스 성삼재 04시출발(2시간간격) 택시구례구역-성삼재(1인당1만원) 중산리-진주(막차19:40분, 1시간20분)

 

 * 클린 산행 실천 - 검정 한 봉지 운동 ( 대간길 휴지 쓰레기 한봉지 줍기 ),   표식 안달기 ( 다른분 표식에 내 닉네임 쓰기 ) - 산행을 하며 의미있는 산행이 되고자  산행중 많지는 않지만 쉬는 구간 휴지 쓰레기 한봉지 만 가지고 하산하려 한다. 표식도 다른분 표식밑 레인팬으로 닉네임과 소속을 쓰려한다.

 

 

 

  산 개 요  

 

 

지리산  1,915m - 경남 함양군 마천면추성리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915m이다.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地理山)이라 불렀고, 또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하는 지리산은 서쪽 끝의 노고단(1507m), 서쪽 중앙의 반야봉(1751m) 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 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에서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 개의 하천이 흘러들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다.
지형은 융기작용 및 침식·삭박에 의해 산간분지와 고원·평탄면이 형성되어 있고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어 있다. 최고봉은 섬록암(閃綠岩)으로 되어 있고 주변은 화강암·화강편마암의 지질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국보·보물 등의 문화재가 많으며, 800여 종의 식물과 400여 종의 동물 등 동식물상 또한 풍부하다.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지리산은 태백산맥이 서남으로 갈라지면서 소백산맥을 이루고 추풍령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한려수도로 흘러나가는 중턱에 굽이치며 우뚝 솟은 천하의 웅산으로 남한 제2의 고봉 천왕봉으로부터 서쪽의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만도 반야봉,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10여개나 줄지어 버티고 있어 웅산 중의 웅산으로 꼽힌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에 걸쳐 5개시군(구례군,남원시,산청군,함양군,하동군)과 15개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둘레만도 8백여리나 되는 지리산은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이라 불려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자(1967년), 최대면적의 육상공원(14억 5천 6백만평)으로서 우리나라 산악의 대표성과 상징성 그리고 역사성을 고루 갖춰 흔히 민족의 영산으로 불릴만큼 우리의 정서속에 깊이 새겨진 자연유산인 지리산(智異山)은 산이 넓은 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두류(頭流), 방장(方丈), 지리(地理또는地利), 불복(不伏), 반역(反逆), 적구산(赤拘山)으로 불려온 산 이름에서 벌써 지리산의 속내와 아픔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흘러나온 산맥이 지리산에서 멈추었다 해서 두류(頭流)로 한다 라고 썼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산세가 멀리 넓게 둘러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순 우리말 '둘러' '두루' '두리' 에서 음을 따와 한문으로 쓰다보니 '두류'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불교적 용어로 대지문수사리보살의 지자와 리자를 따와서 지리산으로 불리다가 '지혜로운 이인이 많은 산' 이라는 뜻으로 변형돼 현재는 지리산으로 쓰인다고도 하며, 일부에서는 지리산이 크고 웅장해 「지루하다」의 남녘 사투리 「지리하다」에서 자연스럽게 변형된 말이라고도 한다. 방장산은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더불어 중국에서 말하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지리산을 지칭하는 이름인 동시에 불교적인 의미로도 쓰이는 산이름이다. 현재 쓰고 있는 지리산(智異山)은 쌍계사 앞뜰에 있는 국보 제47호 진감선사 대공탑에서 출발한다. 신라 정강왕 2년(887)에 최치원이 쓴 비문에 '지리산(智異山)'이 나온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지리산(地利山)으로 표기 했다가 『삼국유사』는 다시 '지리산(智異山)'을 썼으며, 조선시대에 편찬한 『고려사』는 '지리산(智異山)'으로 고쳐 썼다. '지리산(地利山)'은 지리산이 문수도량이라 하여 문수사리(文殊師利)의 글자를 따서 부른 이름이며, '불복(不伏)'과 '반역(反逆)'은 태조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큰 뜻을 품고 명산을 찾아 기도할 때 유독 지리산에서만 소지(燒紙)가 오르지 않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이유로 태조에 등극한 뒤에 지리산을 불복산, 반역산이라 하고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또 빨치산이 우굴거리는 산이라 해서 적구산으로 불리게 됐으니 산이름 에서까지 역사의 편린을 읽을 수 있다.
지리산은 최고봉인 경남지역의 천왕봉(1,915m)을 비롯하여 전북지역의 반야봉(1,751m), 전남지역의 노고단(1,507m)이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남원을 비롯해서 진주와 곡성, 구례, 함양고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은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다.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개천인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개의 하천이 있는가 하면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 등을 간직,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으며, 바로 청학동, 백무동, 연곡동, 악양동, 홍류동 등 여러 마을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금강산은 빼어나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되 빼어나지 못하고」라는 서산대사의 비유가 있듯 지리산은 날카롭고 빼어남은 부족하나 웅장하고 두리뭉실한 기운이 돋보인다. 행정구역상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山 208번지에 소재한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이 대표적이며,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잇는 100리 능선에는 1천 5백미터가 넘는 고봉이 10개, 1천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나 있을 정도로 높고 크다. 평평한 고원지대도 많이 발달해 야생화나 철쭉 등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지리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지리산은 역사의 산이요, 신앙의 산이며, 생명의 산이고, 사람의 산이다.
지리산에 담겨 있는 사연, 사연들이 우리의 한 많은 역사라고 할 만큼 수난과 질곡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찍이 마한, 진한을 시작으로 가야와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국경으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으며, 고려 때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야 했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참상을 겪어야 했다. 또한 민초들의 단내 나는 숨소리가 요동쳤던 동학혁명과 진주농민운동이 지리산에 와서 마지막 거친 숨을 토해냈고,  해방 후에는 빨치산과 토벌대의 피가 계곡과 능선을 붉게 물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리산은 말이 없다. 다만 1천 5백여년의 세월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보여 줄 뿐이다. 지리산은 민족 신앙의 영지다. 예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던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려왔음에서나, 성모사(聖母祠)와 남악사(南岳祠)의 존재에서도 지리산은 성스러운 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시사철 구름 위에 떠 있는 고봉 준령마다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고, 깊은 계곡마다 신령스런 기운이 샘솟는 지리산,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민족 정신이 상처를 입을 때마다 지리산이 먼저 울어 우리를 지켜주었으며, 국운을 열어주는 천지 개벽의 시작이 지리산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하는가 보다. 그러나 이런 신비로움을 구태여 동원하지 않아도 천왕봉에 새겨져 있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글귀처럼 지리산은 우리 모두의 산임을 알 수 있다.
지리산은 수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들에게 삶터를 제공해주는 생명의 산이기도 하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에서 마치 양손을 벌리듯 15개의 남북으로 흘러내린 능선과 골짜기에는 245종의 목본(木本)식물과 579종의초본(草本)식물, 15과 41종의 포유류와 39과 165종의 조류, 215종의 곤충류가 자라고 있다. 또한 경남 산청군의 덕천강을 발원시키고, 경호강을 더해 남강과 낙동강으로 흘러 보내고, 섬진강에도 강물을 보태 경상도와 전라도에 공평하게 삶터를 나눠주고 있다. 인류 문명이 강에서 비롯되었다면 강은 산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산(山)은 인류문명의 모태다. 지리산은 경남의 산청, 함양, 하동군과 전북의 남원시, 전남의 구례군에 걸쳐 있으면서 오만 가지 삶을 아우르고,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 20여 개가 펼치는 산자락 둘레만도 800여 리에 이르는 산답게 많은 시인 묵객들의 작품을 낳기도 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치遠)을 시작으로 고려 때는 이인로(李仁老), 조선시대에는 서경덕(徐敬德), 김종직(金宗直), 김일손(金馹孫), 정여창(鄭汝昌), 남명, 서산(西山)대사 등이 지리산에 올랐다가 느낀 바를 작품으로 남겼다. 고운은 지리산 곳곳에 글과 글씨를 남기고 가야산에서 영원히 입산하며 '스님이여 산 좋다 말씀마오/이렇게 좋은 산을 낸들 어이 떠나겠소/뒷날 내 자취 찾아 보시구려/한번 들면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니'를 읊고는 약속대로 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또 이인로는 고려 무신정권 아래서 참담한 생활을 하다 이상세계를 찾아 지리산에 들어 '지나는 곳마다 선경이 아닌 곳이 없구나/천암(千巖)이 다투어 솟아 있고/온갖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흐르는데/대나무 울타리와 떼를 입힌 집들이/복숭화꽃 살구꽃에 어리어/인간이 사는 곳이 아닌 듯 하구나'라고 노래했다. 화담은 반야봉에 올랐다가 '지리산이 동녘 땅을 다스리고 있어/올라가 보매 마음의 눈이 끝없이 넓어지네/바위는 장난하는 듯 솟아 봉우리를 이루니/아득한 조물주의 공을 그 누가 알랴/땅에 담긴 현묘한 정기는 비와 이슬을 일으키고/하늘에 머금은 순수한 기운은 영웅을 낳게 하네/산은 나를 위해 구름과 안개를 걷어내니/천리길을 찾아온 정성이 통한 것인가' 라는 시를 읊고는 즐거워 했다고 『화담집』에 기록하고 있다. 점필재와 그의 제자 김일손은 각각 17년의 간격으로 지리산을 오르면서, 점필재는『유두류록(流頭流錄)』을, 김일손은 『속두류록(續頭流錄)을 남겼다. 기행문의 백미로 꼽히는 두 작품에서는 당시 선비들의 풍류와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읽을 수 있다. 김일손은 정여창과 지금의 중산리를 거쳐 천왕봉으로 올랐는데 천왕봉 일출을 보면서 '햇살에 비친 계곡과 하늘이 온통 구리쇠를 갈아 뿌린 것 같구나/ 세상의 모든 것이 차츰 눈에 들어오는데 대지의 모든 것이 개미집이요/지렁이가 흙을 물어 쌓은 듯하다'고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천왕일출 감상을 적고 있다. 정여창은 천왕봉을 넘어 화개 땅에 이르러서야 '바람에 버들잎 가볍게 나부끼고/사월의 화개 땅엔 누런 보리 물결/두류산 천만겹 다 보고 나서/한 척의 큰 배로 큰 강 따라 흘러라' 라며 지리산을 보고 난 뒤의 포만감을 노래했다. 천왕봉에 지금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기 전에는 '경남인의 기상'이 있었고, 그전에는 남명의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리지 않는다'는 뜻의 '만고천왕봉천명유불명(萬古天王峰天鳴猶不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서산대사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지리산은 작품의 무대이기도 했다. 『삼국유사』에서부터 지리산을 무대로 한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는 중세 리얼리즘의 대표?方? 판소리를 낳고, 최근에 들어서는 분단의 역사를 기록한 작품들이 지리산을 배경으로 나왔다.
매월당(每月堂) 김시습(金時習)은『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서 지리산자락에 있는 전북 남원 만복사를 배경으로 허황된 듯하지만 남자 주인공 양생과 여자 주인공 최낭자의 사랑을 그렸다.
조선 중기에는 판소리문학의 대표작들인 『춘향전』과 『흥부전』, 『변강쇠타령』등이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몰락한 양반의 손자 석이와 소작인의 딸 순이의 비극적인 삶을 내용으로 하는 황순원(黃順元)의 『잃어버린 사람들』을 비롯해 박경리(朴景利)의 대하소설 『토지』와 김동리(金東里)의 『역마』,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갔어요…' 로 시작하는 신동엽(申東曄)시인의 『진달래 산천』, 뱀사골 마뜰마을을 소재로 한 오찬식(吳贊植)의 『마뜰』, 문순태(文洵泰)의 『피아골』과 『철쭉제』,김주영(金周榮)의 『천둥소리』, 이병주(李炳住)의 『지리산』,이태(李泰)의 『남부군』,조정래(趙廷來)의 『태백산맥』등의 작품들이 지리산을 무대로 신분차이로 인한 갈등에서부터 신·구세대들간의 갈등, 이념의 갈등들이 희망과 좌절, 기쁨과 고통, 사랑과 분노로 뒤엉키는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지리산은 거대하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덕천강과 엄천강, 횡천강을 이루고,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 재가 15곳에 이른다. 또 지리산에서 솟는 샘과 이름을 갖고 있는 전망대, 바위의 숫자만도 각각 50여 개, 마야고와 반야도사, 호야와 연진 등의 설화에 이상향과 신선의 전설을 안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 반야봉 낙조, 세석의 철쭉, 벽소령 달밤, 피아골 단풍, 노고단 운해, 연하봉 설경, 불일폭포, 칠선계곡, 섬진강의 맑은 물로 대표되는 지리산10경을 들먹이지 않고도, 한때 지리산에 350여 군데나 절과 암자가 있었다는 기록, 국보만도 7점, 보물 26점에 지방문화재와 주요 사적지, 민속자료까지 헤아리지 않아도 지리산은 그 자체로서 이미 산으로 충분하다. 지리산은 아무 수식이 필요 없는 산이다.'흰 구름이 산골짜기 에 자욱하니 푸른 바다 물결은 포구를 이루었고, 흰 파도가 눈을 몰아내니 산뜻한 섬이 되어 점점이 깔린 듯하다. 돌담에 몸을 기대고 위아래를 바라보니 정신도 마음도 한가지로 막막하여 몸이 태초의 공간에 안긴 채 하늘과 땅과 더불어 흘러가는 듯 했다.' 천왕봉 성모사에서 1박을 하던 김일손은 밤중에 날이 개이자 밖으로 나와 그 감흥을 읊은 것이다.
'이른 새벽 동틀 무렵 해발 1,915m의 지리산 정상인 천안봉에 올라 보라. 끝없이 펼쳐진 회색 구름바다 저멀리 동녘 하늘에 희뿌연 서기 (瑞氣)가 어리기 시작한다. 이것도 잠깐, 동쪽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면서 휘황찬란한 오색 구름 속에서 진홍빛 거대한 태양이 눈부신 햇살을 부챗살 같이 뻗치며 불쑥 솟는다. 이 장엄한 일출의 모습에는 어떤 경탄사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망연자실(茫然自失)할 따름이다' 천안봉 해돋이 는 지리산 8경 가운데서도 제1경이다. 이 일출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삼대(三代)에 걸쳐 적선을 헤야 된다는 속설도 있다. 아무래도 까마득히 땅을 누르고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솟은 천안봉은 거대한 바윗덩어리들로 이루어졌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짙은 구름과 안개에 싸이고 비바람, 또는 눈보라가 몰아치기 때문에 이른 새벽 천왕봉에 올랐다고 하여 누구나 일출의 황홀경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차례나 거푸 일출을 보러 갔지만 끝내 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3km 떨어진 장터목 산장이 법계사에서 앞날 저녁에 이단 여장을 풀었다가 새벽 3시, 또는 4시에 랜턴을 밝혀 들고 정상으로 출발해야 한다. 아무리 더운 여름철에도 해 돋기 전의 천왕봉은 얼음처럼 차다. 운무가 잔뜩 싸고 있거나 강풍이라도 몰아치면 두툼한 방한복을 껴입고도 견뎌내기 어렵다. 천왕봉은 거대한 암괴(岩塊)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듯이 외로이 서 있다. 이 암괴를 옛날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뜻으로 천주(天柱)라고 물렀는지, 천왕봉 서쪽 암벽에는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천왕봉에는 지난 82년 진주의 산악인들이 두 번째로 세운 오석 표지석이 있었는데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의 '만고천왕봉천명유불명(萬古天王峰天鳴猶不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현재의 표지석은 82년 초여름 당시 경남 도지사 이규호씨와 민정당 실력자 였던 권익현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상남도가 세웠다. 높이 1.5의 자연석을 옮겨 와 세운 이 표지 석의 전면은 '지리산 천왕봉1,915m'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란 글을 새겨 놓았다. (펌)

 

  날     씨

  맑고 흐림(31도)  

  동행 산우

 2030 개별산행팀  

  산 행 평

 

지리산 종주 1년여를 기다려 참석하게 되었다. 대간길 땜방의 마지막이며 사계절 대장님과 1녀여만에 동행 산행으로 가슴 들뜬 산행이었다. 12시에 출발해서 03시에 도착 준비를하고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다다른다. 날씨는 차갑고 오름길에 더위를 느낀다. 종주길이며 대간길 별어려움이 진행을 했지만 휴식이 많이 초반 중반 컨디션 조절로 힘들어 뒤로 쳐지는 구간도 있었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아침을 하고 1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후미조를 기다리다. 출발한다. 지리산 주능선길에 들어 오는 조망이 가슴을 뛰게한다. 산행팀분들이 속도가 빠르게 진행한다. 후미조와는 멀리떨어지고 선두 15명만으로 천왕봉까지 진행한다. 지리산는 일년에 한번을 오지만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고 . 낯설음이 있어  지리산보다 덕유산 소백산이 좋아 한다 . 지리산을 잘알지 못하지만 . 한북금남정맥길 마루리가 되면  지리산 곳곳을 가족과 함게 산행하고 싶다.  장터목에 도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음  천왕봉까지 40여분을 올라 천왕봉 정상석에 도착후 잠시 후미를 기다리려 천왕봉바로 밑에서 잠을 청한다. 산. 누. 름 이란 닉네임을 다들 산을 누른다는 뜻으로 이해 하신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대학생시절  주말 배낭에  커피를 넣어 대둔산 정상  정면 봉우리에서 하늘을 보며 누워 잠을 정하고 잠에 깬후 커피한잔 으로 맘을 편히했던  기억이나   산에 누워 구름을 보며.....라는 앞글자를 따 산. 누. 름 이란 닉네임을 선택했다. 산에 올라 잠을 청하면 자유, 순수, 삶의 힘을 얻는것 같다.  천왕봉 아래 잠깐을 잠에 취해 지리산 영산의 기를 받는다. 단체 사진을찍고 중산리 돌계단로 내려서고 천왕샘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죽음에 내림길을 내려온다. 종주길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내림길 이 더 무섭고 힘들어진다. 무릎이 좋치 않아 4개월동안 고생한터라 걱정이 앞선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로타리 대피소까지 이른다. 별다른 무릎통증이 없다. 하산길이 4개월만에 편한길이 되어 큰부담감을 덜었다. 계곡을 만나 발을 담그고 중산리에 도착한다. 무릎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아진다. 하산 시간이 늦어진다. 쉬는 동안 2시간가량 식다에서 잠을청하고 졸린 눈으로 밥을 먹고 대전에 도착한다.

대간땜방길 이제에 마무리를 한다. 1년여간 홀로, 우락과 아자 사탕과 함께 땜방길 정말 힘겨웠다. 하지만 많은것 을 느끼고 마무리를 지었다. 모든 대간팀 산우님과 개별산행팀에 감사를 드린다. 얼마 남지않은 대간길 느끼며 함께하는 산행이 되리라 기대한다. 끝으로 함께 해준 사계절대장님 ,후미산을대장님 , 시월윤정님에 지리산 종주 회원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성 삼 재

  ▲ 노고단 대피소 및 계단길

  ▲ 노고단 대피소

  ▲  피아골삼거리

  ▲ 임걸령

   ▲ 노루목

  ▲ 노루목조망

   ▲ 노루목 조망터 에서

   ▲ 노루목 조망터

   ▲ 마지막 산행 2년후 너의 모습일것 이다.

   ▲ 삼도봉

   ▲ 삼도봉 조망

 

   ▲ 일출후

   ▲ 삼도봉에서 조망

 

   ▲ 대간땜방길 함께 해줘 고맙다 우락아

   ▲ 화계재

   연하천 대피소 (아침)

   ▲ 벽소령 가는길 에서 조망

   ▲ 벽소령 가는길 에서 조망

   ▲ 벽소령 가는길 에서 조망

   ▲ 벽소령 가는길 에서 조망

    가야할 마루금 뒤에 천왕봉

 

 

   ▲ 벽소령

 

 

 

   ▲ 선비샘

   ▲ 천왕봉이 가까워진다

   ▲ 천왕봉 7.2KM

   ▲ 곰 취 (스미뜨요원이 먹음)

 

   ▲ 영신봉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오름길 -주목

 

   천왕봉

   ▲ 천왕봉 조망

 


출처 : 대전2030산악회
글쓴이 : 산누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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