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s[白頭大幹]

[스크랩] “안개속에 숨어있는 동해를 바라보며 백두대간은 북진한다“

Eugene Lee 2010. 3. 31. 10:08

 
■ 산행일자 : 2010년 03월 28일 일요일
■ 산행경로 : 피재 - 새목이 - 건의령 - 푯대봉 - 구부시령 - 덕항산 - 환선봉 - 자암재 - 광동댐이주단지 - 큰재 - 황장산 - 댓재
■ 산행거리 : 26km 내외
■ 산행시간 : 12시간30분 (후미기준 식사 및 휴식포함)
■ 산행인원 : 백두대간종주대 17명
 
 
칠흑같은 어두운밤 해발 920m의 고개 삼수령에 도착한다. 약한 바람에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때아닌 3월말에 맞이하는 이 무슨 희귀한 일인가..? 몇일전 강원산간과 영동지방에 대설주의보가 있었는데 과연 이곳에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걱정이 앞선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랜턴을 착용하고 삼수령 탑이 세워진 곳으로 오르니 정자가 보이고 그 옆에 숲길로 들어가 오늘의 산행을 시작한다.
 
삼수령은 “난리를 피해오는 고개“라는 뜻에서 ‘피재’라고도 불렸고, 이곳에 떨어진 빗물이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한강을 따라 서해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각각 흘러간다고 해서 삼수령이라 불리운다. 남쪽으로 흐른 낙동강 줄기는 영, 호남 곡창지대를 적시며 백성들의 먹거리를 풍요롭게 하였고 서쪽으로 흐른 한강 또한 수도지역 서울과 경기지역의 번창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동쪽으로 흐르는 오십천 또한 동북아 시대를 예고하는 의미심장한 원천이 되고 있으니 삼수령에 대한 설명은 더할 나위 없다.
 
우려한대로 등로에 많은 눈이 쌓여있다. 다행히도 언제 지나갔는지 선등자의 발자국이 오늘 산행에 편안함을 예고해 준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콘크리트 임도에 내려서고 포장된 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 비포장 임도쪽으로 들어선다. 아직 고도가 낮은 초반이라 눈이 그리 많이 쌓여있지 않아 준비운동을 하듯이 천천히 걷는다.
 
다시 작은 봉우리를 순하게 넘어 내려가니 이정표가 세워진 한전갈림길이 나오고 좌측 백두대간 방향으로 진행한다. 약 1시간여 지난 지점에서 눈밭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 한모금을 마신다. 이어 좁은 능선길을 따라가다 나뭇가지 사이로 좌측 태백 상사미동 마을에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건의령이 얼마 남지 않은듯 하다. 비교적 낙차가 없는 산길을 편안하게 진행하다보니 어느덧 넓은 공터같은 임도에 내려서는데 이곳이 건의령이다. 이정표에는 이곳을 한의령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한켠엔 등산로 안내판이 설치 되어있다.
 
건의령은 삼척으로 유배 온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 이성계 일파에 의해 살해 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태백 산중으로 몸을 숨겼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건의령이란 명칭은 관복과 관모를 벗어 걸었다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 한다.
 
건의령은 또한 한의령으로도 불리우는데, 겨울에 눈이 엄청나게 오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어도 추워서 얼어 죽는다고 찰한(寒), 옷의(衣)자를 써서 한의령이라 불리운다. 그러고 보면 강원도라는 척박한 땅에서 최후를 맞이한 임금이 둘이나 있으니 영월에 유배되었던 조선의 소년왕 단종과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다. 이렇듯 강원도는 서러움이 묻힌 땅이라 아니할수 없다...
 
 
쉼없이 건의령을 지나 푯대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이곳부터는 지도상 군계를 만나는 지점으로 지금부터 마루금은 강원도 삼척과 태백을 가르는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산길은 비교적 완만하면서 순한 길을 따라 고도를 조금씩 높이면서 오른다. 생각보다는 조금 빠르게 이정표가 세워진 푯대봉 삼거리가 나온다. 대간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여서 내려가지만 좌측으로 100미터 거리에 있는 푯대봉 정상에 오른다.
 
푯대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씩을 남긴다. 혹여 날이 밝았더라면 이곳에서 멋진 일출을 볼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던 삼거리로 다시 내려와 대간길로 들어선다.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고 몇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여명이 밝아오는지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에 엉성한 철조망이 쳐진 안부에 내려선다. 가축을 기르는 목장처럼 보인다. 이른아침 눈덮인 목장에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목장지대를 지나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급경사를 오르는데 눈길에 미끄럽기 까지하여 무척이나 힘겹다. 설상가상 배고픔이 밀려와 기력마저 없다. 진행도중 그냥 주저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주변을 샆펴보니 나무에 둘산악회에서 적어놓은 997.4봉이 눈에 보인다.
 
 
눈길를 걸으며 혹여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을까 긴장하고 또 긴장하고, 모든 신경계를 다리에 맞추고 걷다보니 ~ 너무 힘을 주었나..? 근육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역시 눈길을 걷는 산행은 두배로 힘들다더니 그 말이 맞는거 같다.  
 
오늘의 조망은 산안개와 앙상한 나뭇가지로 인해 전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세상은 온처지가 하얄뿐이다. 어느덧 눈길을 걷고 또 걸어 구부시령에 도착한다. 구부시령은 오지에서 생겨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고개 동쪽 삼척 한내리 땅에 한 여인이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 하여 아홉 서방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전설에서 구부시령이라 하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ㅋㅋ
 
잠시 휴식을 취한후 완만한 오름길을 걷는다. 공터로 길이 트여 나가는 곳을 지나 다시 오름길을 걷는다. 오름길 끝이 환해지며 정상에 다다르는 느낌이 든다. 덕항산정상에 도착한다. 밑에서 바라볼때와는 달리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른듯 하다. 
 
정상은 조그마한 정상석과 산불감시 초소가 지어져 있으며 주변은 나뭇가지들로 둘러쌓여 큰 봉우리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덕항산은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 산을 넘어오면 화전을 할수 있는 편편한 땅이 많아 덕메기산이라고 하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항산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어 있다.
 
 
덕항산은 삼척의 명산이다. 덕항산하면 삼척이 떠오르고 삼척하면 그 유명산 환선굴과 그를 품고있는 덕항산이 떠오른다. 산과 바다, 동굴과 계곡이 멋지게 어우러진 해양관광, 문화도시 삼척은 묘한 기분이 드는 고장이다. 동해안을 끼고 있건만, 쉽사리 바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의 해안과 맞닿으며 달리는 험준한 백두대간 산줄기가 도시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바다를 보고난 후에야 해안도시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삼척은 산과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이다.
 
백두대간 분수령 동쪽 고을 삼척에서도 오지중에 오지에 숨어있는 신기면 대이리는 가장 깊은 산골마을로 꼽힌다. 신기면 면소재지에서 차로 30여리를 달려야 나타나는 대이리는 지금이야 깔끔히 포장된 길이지만 과거엔 외나무다리로 이어진 곳도 많았고 비가 많이 내려 계곡물이 불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길이 끊겨 통행이 안됐다고 한다. 마을 앞쪽으론 덕항산과 촛대봉, 문바우 등 바위산들이 뾰족이 솟아있고, 깊숙한 산 속엔 국내 최대의 석회동굴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수려한 산악 경관과 굴피집, 너와집, 통방아 등 민속자료가 풍부하여 대이리 주변 일대를 군립공원으로 지정 하였다.
 
대이리에서 동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을 사람들은 동굴이 여성을 상징한다고 보고 남성을 상징하는 마을 앞쪽의 촛대봉과 함께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명당이라 자부한다. 마을 뒷산에는 아직도 커다란 산삼이 자라고 있다. 대이리 사람들 모두는 심마니로 통하고 산삼은 대이리 사람들의 장수 비결이기도 하다. 대이리 지역에서 발견된 동굴은 모두 54개에 이른다. 특히 덕항산 동쪽 기슭의 동굴지대엔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인 환선굴과 국내 석회암 동굴중 가장 빼어난 미학을 자랑하는 관음굴을 비롯해 양세터세굴, 덕밭세굴, 제암풍혈, 큰재세굴 등 수많은 동굴이 숨어있다.
 
이중 삼척을 “동굴의 왕국”으로 등극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환선굴”은 대이리 동굴지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굴로서 총연장 6.5km로 추정되는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이다. 동굴 내부는 화려한 종유석은 물론 중앙 광장의 옥좌대와 동굴 입구의 만리장성 그리고 도깨비 방망이와 버섯형 종유폭포는 세계 어느 동굴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환선굴만의 자랑이다. 또한 환선굴 내에는 10여개의 크고 작은 동굴호수와 6개의 폭포가 분포하고 있어 통로를 따라 걷다보면 마치 지하계곡을 탐방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대이리에는 아직도 옛 화전민들의 유산인 너와집이 남아 있다. 너와집은 지붕을 두꺼운 나무껍질과 나무판자로 이은 것으로 너와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 사이사이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 놓았다. 보기에는 어설프게 보여도 지붕의 자연재료와 황토벽이 온도와 습도를 조절,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한다. 사람은 살지 않지만 굴피집도 남아 있다. 굴피집이란 지붕에 나무판자 대신 굴피(참나무 껍질)를 덮어 만든 집을 말한다.
 
얌전히 보존되어 있는 물방아 또한 눈길을 끌고 있다. 얼마 전까지 직접 사용했던 물방아는“통방아” “벼락방아”라고도 부른다. 물통에 물이 담기면 그 무게로 공이(찧는 틀)가 올라가고 물이 쏟아지면 공이가 떨어져 방아를 찧는 원리이다. 마땅한 농사거리도, 특산품도 없어 다른 마을에 비해 풍족하진 않지만 마을 곳곳에 고스란히 간직된 우리 유물은 대이리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준다.
 
대이리군립공원 지역외에 삼척을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삼척 성내동에 위치한 관동팔경 제1경이라 꼽히는 죽서루다. 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죽서루는 관동팔경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크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또한 유일하게 바다에 접하지 않고 내륙에 들어와 앉은것이 특이한데 그만큼 오십천의 절경이 바다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이야기다.
 
삼척 정라동에 있는 “척주동해비”는 심한 폭풍이 일어 바닷물이 고을까지 들어오자 동해를 예찬하는 노래를 지어 비를 세웠더니 바다가 잠잠해졌다는 이야기로 유명하고 고려시대 이승휴 선생이 한민족의 대서사시 “제왕운기”를 지은 곳으로 유명한 유서깊은 사찰 미로면 “천은사”와 동해안에서 해안선이 가장 아름답다는 용화해수욕장과 장호해수욕장이 또한 삼척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장 삼척을 더욱더 아름답게 묘사한 영화가 있으니 바로 영화 “봄날은 간다” 그리고 “외출“이다. 이 두편의 영화가 한사람의 감독에 의해서 제작 되었으니 바로 영화인 허진호 감독이다. 서정미 넘치는 영상과 감수성 짙은 대사를 구사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허진호 감독은 삼척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감독이다.
 
영상미를 추구하는 허감독의 로케이션 헌팅은 매우 까다로운 편인데, 삼척은 그 까다로운 눈매를 사로잡은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촬영지 중에 하나이다. 삼척과 허감독이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이영애, 유지태 주연의 2001년 작 “봄날은 간다”의 일부 장면을 삼척에서 촬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삼척 근덕면에 위치한 신흥사와 맹방해수욕장 그리고 대나무숲에서 촬영을 진행했던 허감독은 “삼척은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모든 곳이 촬영지가 될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그리고 4년뒤 2005년, 삼척을 주 무대로 배용준, 손예진 주연의 영화 “외출“을 촬영하였다. 영화 “외출”에서 삼척은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 역할을 하였다. 삼척 일대 26곳에서 촬영이 진행되었고, 영화의 60% 가량이 삼척을 배경으로 채워졌다. 당시 삼척에 100년만에 찾아온 폭설은 영상미를 추구하는 허감독의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는데 큰 몫을 하였다.
 
허진호 감독이 삼척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면, 배우 배용준은 강원도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배우이다. 한류의 시발점인 배용준에게 “욘사마“란 호칭을 안겨 준 TV드라마 ”겨울연가“가 춘천에서 촬영되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삼척에서 촬영한 영화 외출에 배용준이 캐스팅된 점은 우연치곤 재미있는 인연이다.
 
영화 “외출”로 인해 삼척은 여러가지 이득을 보았다. 삼척시청이 밝힌 보도 자료에 의하면, 욘사마 배용준의 출연으로 인해 일본 관광객들이 대거 삼척을 방문하면서 약 30억원의 관광 수입을 올렸으며, 일본의 TV 및 신문 등 각종 매스컴을 통해 삼척이 누린 간접 홍보 효과는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제 환선봉을 향해 길을 걷는다. 여전히 쌓인눈을 밟고 오르내리는라 다리에 통증이 심해진다. 오름길을 걷다 내림길을 걸어가니 우측으로 눈쌓인 철계단이 보인다. 환선굴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 대간길은 좌측 아래로 이어진다. 그 길로 내려가니 덕항산 정상으로부터 조금 지나온 쉼터에 도착한다. 여기서 환선봉까지는 1.4km가 남아 있다.
 
건의령부터 오늘 지나는 구간은 곧바로 북쪽으로 향해 뻗친 구간이다. 대간 마루금 좌측으로는 정선, 홍천, 인제가 연이어 있고 우측으로는 삼척, 동해, 양양, 속초가 연이어 있는 긴 구간이다. 하지만 산안개에 가려 걷는 동안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우측으로 이어지는 동해바다를 제대로 느낄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환선봉을 오르는 동안 우측이 벼랑지대여서 계속해서 위험표시와 안전 줄이 쳐있다. 환선봉에 도착하니 이곳에도 우측아래 절벽 경계에 안전을 위해 줄을 쳐 놓았다. 지척에 눈덮인 귀네미마을의 고랭지채소밭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 옆으로 동해바다는 여전히 안개에 가려 아쉽게 보이지 않는다.
 
환선봉을 출발한다. 우측 환선계곡쪽으로 낭떠러지 표시가 군데 군데 보인다. 내림길로 내려와 앞에 봉우리가 단정히 솟아 보인다. 우측 사면길로 진행해야 대간길이건만 직진길로 그 봉우리를 넘었다.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지않겠는가? 목적지 자암재에 무사히 도착한다.
 
완만한 길을 걸어 잠시후 봉우리를 오른다. 봉우리를 넘어 좌측으로 내려가는 동안 숲에 안개가 자욱하다. 구부시령까지 걷던 때와 달리 봉우리는 크게 오르고 내리는 곳이 없다. 그렇게 지나는 길마다 산세가 다르다. 그러나 근육통증 때문인지 낮은 봉우리 하나하나가 나에겐 힘겹다.
 
진행도중 좌측으로 시선이 트여 보이는 곳이 밭처럼 보인다. 자세히보니 눈덮인 고랭지채소밭이다. 숲길을 빠져 나가 밭뚝길을 걸어가는 동안 마을과 함께 넓게 펼쳐 내려다 보이는 눈덮인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물론 안개가 살짝 드리워진 보기드문 색다른 풍경이다. 다시 숲길로 들어서고 잠시후 다시 포장길이 나타나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이곳은 끈끈한 삶의 땅, 일출이 아름다운 마을. 귀네미 마을이다. TV 인기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배추고도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던 해발 1,000m급 고지에 넓은 고랭지채소밭을 일구고 사는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원래 이곳이 고향이 아니다. 태백, 정선 등 강원 남부의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80년대 후반에 완공된 광동댐으로 인해 당시 삼척 하장면 광동리, 숙암리, 조탄리 등에 살던 주민들이 대대로 살던 고향을 쫓기듯 떠나 터를 잡은 곳이 귀네미골이다. 수몰될때 보상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대도시 등으로 떠났지만 보상비가 너무 작아 마땅히 거처를 옮기기 조차 힘든 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사람이 살지 않던 귀네미골이 이주지로 제시됐다.
 
모두 37가구가 귀네미골로 이주를 신청했고 원시림으로 빼곡했던 산을 깎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보자며 나무를 뽑고 땅을 갈아 지금의 마을을 일궜다. 이주 처음에는 물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결국 물 때문에 고향을 떠나 온 주민들은 또 다시 물 때문에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끈끈한 생활력을 갖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고통도 잠시였다. 35만평에 이르는 산을 개간하고 주택을 짓고 터를 잡은 것이 이제는 옛 추억이 되었다. 현재 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24가구 90여명이다. 억척스런 삶의 고통과 결과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렇다 이곳은 백두대간에 걸쳐있는 마을이다. 마을을 휘감고 있는 것은 온통 산이다. 그러나 자세히 쳐다 보면 그냥 산이 아니라 잘 가꾸어진 비탈 밭이다. 귀네미 마을의 산은 자신의 몸을 통째로 내놓고 사람들에게 삶의 뿌리를 내릴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배추밭의 가장 높은 능선에 오르면 동해의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1월 1일이면 일출을 보려고 많은 이들이 마을을 찾기도 한다. "정동진보다 몇분 일찍 일출을 볼수있는 곳"이다.
 
귀네미 마을이란 이름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세가 흡사 소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우이령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한다. 전형적인 산간마을인 이곳은 정감록에 피난처로 기록된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오르막 외길이 이 마을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이다. 마을은 외길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정감록의 피난처라는 기록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고요한 마을의 품세를 금방 알아차릴수 있다.
 
마을은 “배추고도”라고 불릴 만큼 고랭지 배추의 주 생산지가 되었다. 배추에 수분이 없고 당도가 높은 것이 귀네미 배추가 전국 최고의 맛을 갖고 있는 비결이다. 오늘은 다행이도 바람이 없다. 이곳 배추밭 능선에는 지독하게 바람이 분다. 백두대간을 넘는 이 바람은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로 세다. 비슷한 고랭지채소밭인 매봉산처럼 이곳에도 조만간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된다고 한다. 11대의 국산 풍력발전기가 들어서기로 했고 이미 착공식도 마쳤다고 한다.
 
 
산길을 오르며 우측으로 보이는 동해를 바라보며 감격스러워 해야한다. 분명히 우리가 대간의 능선을 따라 북진중인 것을 확인해야 하는 구간이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속에 사물의 분간조차 힘겨운 숲속에서 무엇이 보이겠는가..?
 
봉우리를 넘고 내려서니 희미하게 광활한 고랭지채소밭이 또 펼쳐진다. 안개속 운치있는 길을 걷는것도 색다른 느낌이다. 큰재에 도착하니 황장산까지 4.4km 남아 있다. 오늘에 산행도 이제 마무리가 되어간다. 숲길로 들어서니 잡가지가 칙칙하게 몸을 가로 막는다. 조금은 성가시다. 만약에 여름에 이곳을 지났더라면 무척이나 짜증이 났을 것이다. 황장산을 지나 급경사 내림길이 위험하다. 지척에 차 소리가 들린다. 오늘에 종점 댓재에 무사히 도착한다.
 
 

함께하신 대전2030산악회 “백두대간종주대“ 여러분 수고 셨습니다. 담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 간 첩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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